발렌타인, 당신은 누구시길래
해마다 발렌타인 데이가 다가올 무렵이면 슬슬 초콜릿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기업들이 이 'Day'를 놓치기 않고 다양한 프로모션 상품도 내놓고 광고를 하기도 합니다.
'발렌타인 데이'를 사람들이 어떤 날로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국내 최대라 알려진 포탈에 들어가 검색해보았습니다. 이런 정보가 뜨더라구요.

의미 :
매년 2월 14일, 여성이 좋아하는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
발렌타인데이의 유래 :
3세기경 원정하는 병사의 결혼을 금지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에... 더보기
초콜릿 정보 :
초콜릿의 역사, 초콜릿의 분류, 초콜릿 포장법, 별자리에 따른 초콜릿 준비
선물가게 정보 :
전국 유명 초콜릿 전문점, 선물 및 랩핑샵, 플라워샵
관련정보 :
데이트 장소, 이색 레스토랑, 초콜릿 만들기, 발렌타인데이 공연
다른 인터넷 site 들에서 검색된 정보들도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인터넷에 많은 사람들이 끼리끼리 주고 받는 정보도,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어떤 선물이 좋으냐, 어떤 이벤트가 좋으냐, 식사나 이벤트 장소는 어디가 좋으냐, 이런 내용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을 요약하자면, ‘발렌타인 데이’는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사주고, 혹은 꽃이나 다른 선물도 하고, 특이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거나, 색다른 event 도 벌이고 하는 연인들을 위한 날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제 친구가 미국에서 온 지인이 호텔 예약을 부탁하기에 국내 몇몇 호텔을 연락해보니, Yen 高 현상으로 특급호텔들이 요즈음 일본인 관광객 덕에 객실 예약이 만만치 않은데다가, 토요일은 발렌타인 데이라 빈 방이 없다고 하더랍니다. 실제로 한 특급호텔에 근무하는 분께 여쭈어보니 발렌타인 데이 일박 프로모션 상품이 많이 팔렸고, 예약자 보다는 Walk-in 손님이 더 많다고 합니다. 몇 년 전 시내 H모 특급호텔에서 처음 발렌타인 데이 One Night Promotion 상품을 내놓았을 때 여기 저기서 비난을 받아, 광고를 못하게 했었는데, 이제는 어느 누구도 제약을 거는 사람이나 조직이 없다고 해서 저마나 이런 promotion 상품들을 내놓고 알리고 한답니다. 아무튼, 발렌타인 데이는 이제 어떤 계기나 유래로 이런 날이 지정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은 채로 마케터들의 활약으로 전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날’이 된 것 같습니다.
내친 김에 다른 이런저런 site 를 뒤지면서 Valentine day 에 관한 정보를 모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제가 내린 결론은 아무도 Valentine Day의 유래가 이거다 라고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없는 듯 해 보입니다.
더욱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이 날에는 초콜릿이 전세계적으로 점점 많이 팔리게 된 것 같습니다. ‘약간 쌉싸름 하면서 달콤한 초콜릿이야말로 사랑을 고백하기에 딱 맞는 상품이다’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누군가 생각해내고, 그를 환영한 업계에서 열심히 마케팅을 한 덕이겠지요. 아, 누구를 사랑하는 일이 초콜릿 만큼 약간은 쌉사름 하지만 그렇게 달콤하기만 한 건지요? 아님 달콤한 사랑만 주고 받자는 의지의 표현인지요?
그럼 왜 하필 그날은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로 알고들 있는지를 조사하니, 그 계기는 1960년 일본 M제과가 여성들에게 초콜릿을 통한 사랑고백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라는 설도 있더라고요. 그게 사실이라면 일본의 M사는 지구 마케팅 역사상 가장 성공한 ‘day marketing’ 중 1-2위를 다툴만한 사례를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내친 김에 무슨 무슨 Day 라고 불리는 날이 도대체 몇 개나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는 ‘세계 기념일’은 50개가 있고, 그 외 마케터들이 만들었음 직 한 날들도 50개쯤 있었습니다. 의료계에서 회자되고 있는 ‘눈의 날’, ‘간의 날’ 등, 각종 산업군에서 만들 ‘**날’들 까지 다 합치면 1년 365일이 거의 무슨 ‘날’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놀랍게도 매월 14일은 1월부터 12월까지 무슨 무슨 day로 이름 붙여져 있습니다. 창의적이긴 하다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참으로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되는 14일 Day들이기에 언급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매월 14일 외에도 축협에서 돼지고기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3월 3일 삼겹살 데이, 농림부에서 닭고기 소비 촉진을 위한 99데이, 몇 월 몇 일인지 짐작이 가시죠? 오이 데이, 그리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 11월 11일의 날씬한 과자 데이부터, 약 50여 날이 무슨 데이로 명명되어 있었습니다.
올해는 Valentine Day 관련 어떤 기사들이 국내 일간지에 소개되었나를 검색하니, 다양한 기업들이 아주 다양한 프로모션 행사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개발국의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공정무역’으로 만들어진 착한 초콜릿 제조업체가 뜨고 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기사 중 압권은 한 일간지에 ‘미혼남성들 발렌타인 데이 초콜릿보다는 현금을’이라는 Headline 으로 소개된 기사입니다.
기사의 내용은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전국 20세 이상 미혼남성 2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미혼남성들이 바라는 발렌타인 선물이 전통적으로 받았던 '초콜릿'이 아니라 '현금'인 것으로 나타났으니, 이는 남녀간의 관계에도 경제 불황이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는 내용입니다.
기사가 계속 됩니다. ‘남성들이 발렌타인 데이에 원하는 선물 중 전통적으로 받던 초콜릿을 받고 싶다는 답변은 전체 응답자의 7%인 19명으로 전체 순위에서 7위에 머물렀던 반면 '현금'을 원한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27%인 68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여행(13%)'이 33명으로 뒤를 이었다.’ (이하 생략)
세상에, 이런…. 은근 화가 나려 하면서, 울고 싶어졌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전체 sample 수가 대한민국 전국 20세 이상의 미혼남성 256명이고, 그 중에 68명이 ‘현금’이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저는 여기서 대한민국의 미혼 남성이 몇 명이나 되는지, 그래서, 표본수니, 조사의 방법이니 신뢰도니 뭐 이런 것을 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대한민국 미혼 남성 68명이 응답한 자료를 토대로, 대한민국 미혼 남성들이 경제 불황 가운데 맞게 된 발렌타인 데이라고 해서, 당신들이 사랑하는 여성에게 ‘현금’을 받았으면 하는 사람들로 오해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미디어의 기자분들은 조사 자료, 통계, Data이런 숫자들을 선호합니다. 그 이유는 본인들이 그들의 독자들에게 ‘fact’ -정확한 사실-를 전달하여야 한다는 본인들의 직업의식이나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간파한 마케터들이나 홍보하는 사람들은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통계자료가 있으면 이를 바탕으로 기획된 보도자료나 기획기사들을 매체에 배포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처음부터 이런 결과물들을 기대하면서 조사를 기획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면 안되는 것은 그 조사의 결과로 얻은 data들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을 만 한 것인지를 검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저를 위로해주는 기사가 하나 검색되었습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한 ‘촛불상 시상식’에 관련된 기사입니다. 촛불상은 자신을 녹여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사회와 이웃을 위해 자기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한국대학생대중문화감시단이 13년째 개최하고 있는 ‘캔들 데이 캠페인’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합니다.
캔들데이 캠페인은 상업주의에 물든 발렌타인 데이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 문화로 제안한 캠페인으로, 매년 2월 14일을 ‘캔들 데이’로 정하고 촛불처럼 주변의 이웃과 사회를 밝히는 사람이 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 인컴브로더도 ‘무슨 날’을 활용하는 PR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고객사인 김안과 병원의 위해 ‘눈의 날’에 맞는 기획을 해 다양한 publicity 활동들도 하고, 노동부의 고용지원센터 홍보를 하면서’19 Day’(일을 구하는 날)라는 날도 만들어 일을 구하는 사람들과 사람들 구하는 기업들을 연결시켜주는 행사도 해보자는 제안도 하였고, ‘간의 날’, ‘물의 날’ 이런 Day 를 활용하여 저희 고객사와 연관이 있는 ‘day’ 에 Event Marketing 도 하고, 정책 PR 에 필요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활동들도 합니다.
고객사의 비즈니스 목표와 마케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들과 최적의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 또한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고안하는 것, 이런 활동들이 PR업에 종사하는 저희 같은 사람들이 매일 매일 고민하는 하일상이죠. 하지만 동시에 Public Relations 의 기본정신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어느 한 쪽이 아니라 메시지를 받는 사람들에게도 mutual benefit 이 돌아가도록 노력해야 함을 잊지 않으려는 PR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Valentine 이라는 분이 몇 해전 어디서 태어나신 누구신지 모르지만 그 분은 ‘당신의 날’에 후세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 아시면 기뻐할지, 혹은 저 같이 울고 싶을지 궁금합니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서점에서 아동서적 코너에서 ‘Valentine Day’ 라는 그림동화책을 우연히 발견하여 읽은 기억이 납니다. Valentine Day의 유래를 설명하는 책이었습니다. 언제라고 쓰여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암튼 옛날에 Saint Valentine – 聖 바렌타인 신부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이라는 聖人이 평소에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는 선한 일을 많이 하셨는데, 그분을 기념하는 날로 그 유래가 시작되었다고요.

그 다음에는 그 동화책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초콜릿이니 사랑고백이니 하는 이야기는 읽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누군지 그 동화책의 작가는 어린이들에게 Valentine Day 가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날로 기억되기를 바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심심한 일상을 벗어나 잠깐 재미있자고 만든 이런 Day들에 뭐 그리 윤리선생 같은 이야기를 길게 하고 있느냐고 제게 이야기하고 싶은 분들도 계시리라 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Valentine Day 가 안타깝기만 한걸요.
PS: Saint Valentine 님,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전혀 모릅니다. 실존하셨던 Saint Valentine 이 여러 분 계시니, 우리가 기념하는 이 날의 주인공이신 당신께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당신의 날이 요상한 상업주의에 빠져들어가는 게 싫다 싫다 하면서도, 혹시 제 사랑하는 우리 인컴브로더 후배들이 Black Day 에 끼리끼리 자장면 먹게 되는 일이 생기면 싫을 것 같아, 올해도 저는 초콜릿 바 한 개와 Grace 과자 한 통씩을 나누어 준 불쌍한 속물임을 고백합니다. 내년부터는 저도 당신의 날에 우리 인컴브로더 식구들 이름으로 저희들의 작은 사랑을 촛불 같은 분들이 후원하는 곳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착한 인컴브로더 가족들도 더 기뻐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세상에는 건전한 시민과 건전한 기업가들이 훨씬 많다고 믿사오니, 그들을 연결하는 마케터 들도 당신의 날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었을지를 한번쯤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해주소서.






















댓글을 달아 주세요
미혼남성들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보다는 현금을 선호한다는 한 일간지 기사 정말 OTL이예요.ㅋㅋ
참~ 아름다운 글이네요~ ^^ 부사장님의 끊임없는 호기심을 통해 이렇게 유용하고 가치있는 정보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얻을 수 있다니...이것이 블로그라는 툴이 가진 놀라운 장점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